1918년12월 15일에 태어난 치히로는 14세에 유화와 스케치를 그리고 18세에 서예를 배웠으며 1949년에는 종이극 <엄마 이야기>(1949년)를 통해 화가로서 자립하는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 후 서양의 수채화에 동양의 전통 회화 기법을 조화시킨 개성 넘친 기법으로 섬세한 표현을 실현해 냅니다.
볼로니아 국제아동도서전 그랑프리(1973),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 동상(1974)을 비롯한 많은 수상력을 지닌 치히로는, 1973년 가을 암세포가 발견되어 이듬해 8월8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평생 어린이를 테마로 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한 개성적인 활동은 모델 없이도 10개월 된 아기와 1살 난 아기의 차이를 그려 낼 정도였으며 현재 남아 있는 9,300여점의 치히로컬렉션에는 날카로운 화가의 눈과 확실한 실력으로 그린 어린이의 모든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치히로는 한평생 평화를 기원하였습니다. 그녀는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의 행복과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어린이와 꽃을 담은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젊은 시절에 전쟁을 겪어야 했던 치히로는 작은 생명이 지닌 빛을 꾸준히 그림에 담아 내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연표

생후 57일째
1919년

쇼와천황 즉위식에 참석한 부모와 (왼쪽 끝)
1928년

1918 12월 15일 후쿠이현 다케후시에서 태어남. 이듬해 도쿄로 상경함.
1933 오카다 사브로스케(岡田三郎助)를 스승으로 데생과 유화 공부를 시작함.
1936 고등여학교 졸업. 슈요카이(朱葉会) 여자 서양화전에 입선.
1937 오다 슈요(小田周洋)에게서 후지와라 고제이(藤原行成)류의 서예를 배우기 시작함.

신부차림의 치히로
1939년

중국 보리(勃利)현 모리오카부대 숙소에서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1944년 6월

1939 봄에 결혼하여 만주의 다롄(大連)으로 건너감.
1942 나카타니 다이(中谷泰)를 스승으로 다시 유화를 그리기 시작함.
1944 4월 여자 의용대에 동행하여 만주로 건너감. 8월 전황 악화로 인해 귀국.
1945 공습으로 집이 소실되어 외가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에 피난함.

남편 마쓰모토 젠메이와
1950년

시모샤쿠지이(下石神井)의 신혼집 예정지에서
1951년 11월

1946 외가가 있는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일본 공산당에 입당. 봄에 상경하여 인민신문의 기자가 됨. 아카마쓰 도시코(赤松俊子)의 제자가 됨.
1949 종이극 연극 「엄마 이야기」를 출판, 이듬해 문부대신상 수상.
1950 마쓰모토 젠메이(松本善明)와 결혼.
1951 장남 다케시(猛)가 태어남.

자택에서 장남 다케시(猛)와
1952년

쇼각칸 아동문화상 수상식에서
1957년 11월

1952 도쿄도 네리마구(현재 치히로 미술관・도쿄 소재지) 이후 22년간 이곳에서 창작활동을 함.
1956 쇼각칸(小学館)회화상 수상.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를 그림.

자택에서 스케치를 하는 치히로
1960년

스페인 톨레도의 길가에서
1966년

1960 「아이우에오의 책」을 그려 이듬해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수상.
1963 잡지 「고도모노 시아와세 (어린이의 행복)」의 표지를 그리기 시작함.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부인 회의에 참가.
1966 유럽을 여행. 귀국 후 안데르센의 「그림 없는 그림책」을 그림.

마가렛 꽃이 핀 정원에서
1968년 5월

증축한 어머니(후미에)의 거실 툇마루에서
1972년 봄

1967 「내가 어렸을 때에」를 그림. 남편 젠메이가 중의원에 당선.
1968 그림으로 전개해 가는 그림책으로써 시도한 첫 작품「비 오는 날 집 보기」을 그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그래픽상을 수상한 축하자리에서
1973년

1973 「작은 새가 온 날」을 그려 볼로니아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그래픽상을 수상. 「전쟁 불 속의 아이들」을 출판하고 이듬해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 동상 수상. 가을 간암 판정.
1974 8월 8일 타계. 유작 「빨간 초와 인어」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