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도를 들고 있는 소녀, 1973년

    후기 화풍

    치히로의 후기를 대표하는 화풍으로는 물기를 가득 머금은 굵은 붓을 사용하여 힘 있는 붓의 필치를 잘 보여주는 수채화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치히로는 이미지가 결정되면 밑그림을 그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에 붓을 움직여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인쇄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치히로가 예전부터 선호했던 ‘다라시코미법’도 보다 섬세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다라시코미’란 색을 칠한 뒤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색 또는 다른 색을 덧입혀 복잡한 번짐 효과를 얻는 방식으로, 다와라야 소타츠나 오가타 고린 등의 동양화가가 사용해 잘 알려진 기법입니다. 치히로는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대상을 표현하는 ‘몰골법’도 자주 활용했습니다. 또한 제아미의 『가덴쇼』(후시카덴)를 공부하면서 ‘숨기면 꽃이 된다’는 발상에 공감해 대담한 생략을 구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치히로의 작품에는 동양과 일본의 예술 감각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